**알쓸신건에대한 이야기는 건축재료 잡지인 매거진 감에서 발췌하였습니다.
타일의 어원
타일(TILE)은 ‘덮는다’, ‘씌운다’는 뜻의 라틴어 테굴라(tegula)에서 유래하였다. 초창기에 타일은 내구성이 약한 건축물이나 구축물의 표면을 엎어 구조의 내외부를 보호했다. 현재는 외장재보다는 내장재로 많이 쓰이며, 과거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색과 모양으로 만들어져 건축에 예술성을 부여하는데 탁월한 역할을 하는 재료이다. 특히나 문화권에 따라 타일의 형태와 모양이 달라졌는데 석조 건축물을 짓는 서양에서는 주로 벽면을 장식하는 마감재로 쓰였으며, 목조 건축물이 대부분인 동양에서는 타일을 비를 막는 기와와 장식용 전으로 사용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우상을 직접 만들지 않고 신을 숭배하는 아라베스크식의 곡선을 타일로 표현해 사원을 장식하기도 했다
최초의 타일
도자를 건축에 처음 적용한 것은 대략 기원전 5000년경으로 메소포타미아문명에서 시작한다. 당시의 도자는 어도비(adobe)벽돌을 덮개 없는 화덕에 구운 소성 벽돌이었다. 어도비 벽돌은 강가의 진흙을 밀집과 섞어 네모난 틀에 넣고 햇볕에 건조해서 만든 것으로 제작은 간편했지만 물에 쉽게 녹아내리는 단점이 있었다.
녹아내리는 단점을 보강하기위해 소성 벽돌이 만들어졌다. 이는 구축이라는 벽돌 본연의 목적에서 벗어나 타일과 비슷하게 벽체를 마감하고 장식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대표적으로 네부카드네자르 2세(BC605~BC562)의 통치 시기에 축성된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성문인 이슈타르의문(Ishtar gate)이 있다. 성문의 표면은 유광 벽돌로 이루어졌고 그 위에는 노란색, 하얀색으로 유약을 바른 상상 속 동물 문양이 부조되어 있다. 대략 높이 14m에 길기 250m로 추정되는 이 거대한 성문은 당시 신바빌로니아 제국이 얼마큼 번영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타일의 진화, 채유타일의 등장
타일은 이슬람 문화권을 만나면서 유약을 발라서 구운 채유타일이 등장하면서 독보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이란의 이맘 모스크, 터키의 블루 모스크, 스페인의 알함브라궁전 등에서 섬세하고 화려한 채유 타일을 볼 수 있다. 고도로 발달된 장식기법과 세공은 현대까지 놀라움과 감탄을 자아낸다. 이슬람은 7세기부터 13세기 종업까지 번성하며 당시 아프리카 북부, 유럽의 이베리아반도, 현재의 이란 지역인 사산조 페르시아, 그리고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를 정복하였다. 이에 정복한 지역의 문화를 거부감 없이 수용하며 로마 가톨릭, 동로마의 그리스 정교, 페르시아의 오리엔트 문명, 중국의 중화문명 들 당대 가장 찬란했던 문화들을 융합 발전시켰다. 로마 모자이크에 수학적 반복과 대칭미를 더한 이슬람 모자이크, 중국의 백자를 모방하여 제조한 하얗고 불투명한 주석 백양 도기 타일, 중국의 청화백자를 흉내낸 백지 남채 도기타일, 아프리카 이집트로부터 전수된 금속 광택의 러스트 타일까지, 이슬람 문화권을 통해 타일은 큰 발전을 겪었다.
타일의 보편화
타일은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을 통해 현대인의 일상적인 재료로 자리 잡았다. 이전까지 타일은 제작 과정이 까다롭고 수공비가 많이 들어 중국의 도자기와 보석만큼 귀한 재료로 여겨졌으며, 왕과 귀족들의 사치품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을 통해 타일 전사 기업과 건식 제조 기술이 발명됨에 따라 생산과정이 간단해졌다. 19세기에 이르러 자본주의 체제가 완성되면서 건축 붐이 일어나 공공시설물과 주택을 타일로 장식하며 중산층에게까지 널리 보급되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건축 내장재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가 되었으며, 모든 건축물에서 꼭 볼 수 있는 가장 친숙한 자재로 자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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